고팍스 인수 2년 후…바이낸스, 고파이 상환 책임 회피

고팍스 인수 2년 후…바이낸스, 고파이 상환 책임 회피

2년 전 고파이 예치금 상환을 약속하며 고팍스를 헐값에 인수한 바이낸스가 끝내 책임 이행을 외면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투자금 미지급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피해 규모는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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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디센터가 입수한 2024년 4월 8일 회의 녹취록에서 바이낸스 임원은 “크립토 바스켓을 사용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리더십 팀을 내부적으로 설득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스켓으로 사용자들을 보호하려 해도 회사는 결국 살릴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고파이 미지급금을 상환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의에는 바이낸스 임원진 2명과 고팍스 전 주주가 참여했다. 실제 회의가 진행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고파이 상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크립토 바스켓은 바이낸스가 2023년 고파이 고객 상환을 위해 조성한 상환 재원이다. 고파이에 고객 자금이 묶인 것은 2022년 FTX 파산 여파로 고파이 운용사 제네시스 트레이딩이 지급불능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팍스는 고파이 예치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바이낸스는 이를 포함한 투자 조건으로 고팍스 인수를 추진했다. 크립토 바스켓은 바이낸스가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 약 566억 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미리 매입해 둔 것이다. 당시 고팍스 대표였던 레온 싱 풍 전 바이낸스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오프라인 간담회에서 고객 상환을 위한 자산을 이미 매입해 보관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바 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바이낸스는 입장을 번복하고 상환이 어렵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는 가상자산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전액 상환이 어렵다고 밝혀온 바이낸스 입장과도 충돌한다. 이미 해당 자산을 매입해둔 상황이라면, 가격 상승 여부와 무관하게 사용자에게 지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바이낸스 임원은 녹취록에서 “우리(바이낸스)가 돈을 넣을 수도 없고, 부채나 자본 형태로도 안 되니 새로운 투자자가 채무를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낸스가 상환을 미루는 표면적 이유는 금융당국이 고팍스 대주주 변경 신고를 수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가 해외에서 자금세탁 혐의로 수천억 원대 벌금을 부과받은 전력이 있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낸스는 이를 명분 삼아 상환 이행을 사실상 유보하고 있고, 이 사이 투자자 피해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고팍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미지급 피해 금액은 2023년 말 약 620억 원에서 2024년 말 1479억 원으로 급증했다.

고팍스 전 주주들은 당시 고파이 미지급금 상환을 바이낸스가 책임지기로 합의하고, 보유 지분을 시세보다 크게 낮은 약 1000억 원에 양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초 고팍스의 기업가치가 3000억 원 후반대로 평가됐던 점을 감안하면 인수가는 크게 절하된 수준이다. 2023년 2월 당시 고파이 채무액을 제외하면 전 주주들이 실제로 거래한 대금은 300억 원 안팎에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준행 전 고팍스 대표는 “2023년 2월 바이낸스가 고팍스로 하여금 고파이 전액 상환을 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당시 고파이 채무액 전액을 주식으로 바이낸스에게 선지급했다”면서 “하지만 바이낸스는 대가를 받고도 어떠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낸스가 고팍스 전 주주들에게 주식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정황도 녹취록에서 확인됐다. 바이낸스 임원은 “새로운 투자자들의 조건은 기존 주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금을 포기하거나 주식을 다시 가져가라는 요구다. 주식 대금은 바이낸스와 전 주주 간 계약 사항이지만, 이를 신규 투자자 조건을 이유로 무효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에 고팍스 전 주주는 “창펑자오 전 바이낸스 최고경영자가 주식 대금 지급을 유예하지 않으면 고팍스를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해 결국 요구를 들어줬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기존 계약 자체를 무효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요구가 과연 처음부터 법적으로 타당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바이낸스는 고팍스 인수 이후 고파이 상환 책임도, 기존 주주에 대한 주식 대금 지급도 이행하지 않은 채 새로운 투자자에게 고팍스 지분을 넘기려는 방식으로 사태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손실은 외부에 전가하고, 투자 유치는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낸스는 이번 사안에 대해 “고팍스는 당시 자본잠식 상태였고 부채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규 투자자 유치를 위해 기존 계약 조건에 대한 재협의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 관계자는 “지분 인수 계약상 자유롭고 정상적인 경영 환경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재는 대내외적 사유로 해당 권리를 원활히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창펑자오 전 바이낸스 최고경영자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바이낸스가 대주주로서 고팍스 경영보다 고파이 피해자들 복구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이라고 그는 전했다. 이어 바이낸스 관계자는 “현재까지 고파이 부채의 약 25%를 선지급했고, 크립토 바스켓은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사용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신규 투자자 유치와 자금 지원 등 고팍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고팍스는 지난 4월 중순 이 전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팍스 측은 이 전 대표가 바이낸스에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동 주주들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절차를 진행했으며, 2023년 고파이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조건으로 체결된 계약에도 부당한 조항이 포함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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